아파트나 빌라 주차장에서 무개념 주차나 얌체 이중주차를 보고 분통이 터져 “너도 한번 당해봐라”라는 심정으로 상대방 차량 앞뒤를 바짝 막아 차를 빼지 못하게 막아버리는 이른바 ‘보복 주차’ 사례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물리적으로 차량을 긁거나 부수지 않았으니 범죄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 형법의 시선은 전혀 다르다.
차량을 파손하지 않고 단순히 앞뒤나 좌우를 가로막아 운행하지 못하게 만든 행위만으로도 형법상 ‘재물손괴죄’가 성립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이다.
그렇다면 상대방이 먼저 무단 이중주차로 출차를 방해하고 경찰의 이동 명령까지 무시한 파렴치한 상황이었다면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대전지방법원에서 선고된 실제 판결(2025고정971)을 통해, 차량 출차 방해 행위가 재물손괴로 처벌받는 구체적 법리와 정상참작으로 ‘선고유예’가 내려진 결정적 이유를 상세히 짚어보고자 한다.

1. 사건의 전말: 모닝을 가둬버린 아반떼와 오토바이의 8일간 대치
사건은 2025년 4월 24일 아침 8시경, 대전 서구의 한 건물 주차장에서 일어났다. 피고인은 평소 주차 갈등으로 감정이 극도로 좋지 않던 피해자 소유의 모닝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피고인은 피해자가 차를 쓰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막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자신이 운행하던 아반떼 승용차를 모닝 승용차 뒤편에 바짝 붙여 대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이 소유한 오토바이를 모닝 승용차의 왼쪽 옆면에 바짝 붙여 주차했다. 뒤와 옆이 완전히 막혀버린 모닝 승용차는 사실상 바퀴가 묶인 셈이 되었다.
이후 피해자로부터 차를 빼달라는 연락을 받았음에도, 피고인은 이를 거부한 채 무려 일주일이 넘는 2025년 4월 30일 오후 3시까지 그대로 방치했다. 결국 피해자는 8일 동안 승용차를 운행하지 못해 출퇴근길에 택시를 타거나 렌터카를 빌려 타야 했다.
검찰은 피고인을 형법 제366조 재물손괴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피해 차량 모닝의 물리적 포위 상태
2. 법원의 핵심 법리: 망가뜨리지 않아도 ‘효용을 해치면’ 손괴죄
피고인 입장에서는 “차를 찌그러뜨리거나 부품을 고장 낸 것도 아닌데 왜 재물손괴냐”라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형법 제366조가 규정하는 재물손괴죄의 핵심 개념은 ‘물질적 훼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법원 확립 판례(대법원 2021. 5. 7. 선고 2019도13764 판결 등)에 따르면, 재물손괴죄에서 ‘재물의 효용을 해한다’는 것은 물건의 본래 목적과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만드는 일체의 행위를 포괄한다.
- 자동차의 본래 효용은 도로를 주행하며 사람이나 물건을 운송하는 데 있다.
- 비록 자동차 외관에 아무런 흠집이 나지 않았더라도, 다른 차량이나 장애물로 포위하여 운전자가 차를 주차장에서 꺼내 운행할 수 없게 만들었다면 이는 일시적으로 자동차 본래의 효용을 상실시킨 것으로 본다.
- 따라서 이동 요청을 거부하며 장시간 출차를 막는 행위는 형법상 명백한 재물손괴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게 된다.
3. 반전의 양형 이유: 벌금 10만 원의 ‘선고유예’가 나온 배경
법원은 피고인의 행위가 재물손괴에 해당한다는 점을 명백히 인정했다. 범행 기간이 8일로 결코 짧지 않았고, 피해자가 렌터카를 빌리며 경제적 손해를 입은 점은 분명히 불리한 정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전지방법원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실형이나 무거운 벌금형 대신, 벌금 10만 원의 형 선고를 유예(선고유예)하는 극히 이례적인 관용을 베풀었다.
선고유예란 유죄는 인정하되 사안이 경미하고 참작할 사정이 클 때 형의 선고를 2년간 미루어두었다가, 그 기간 동안 별다른 사고가 없으면 형의 선고를 면하게 해주는 제도이다. 재판부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데에는 사건의 숨겨진 발단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법원이 선고유예를 결정한 4대 핵심 사유
판결문에 따르면, 사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해당 건물에 주차할 권한 자체가 전혀 없는 외부인이었다. 심지어 피해자는 건물에 거주하던 남자친구와의 다툼으로 앙심을 품고, 다른 입주민 차량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고의로 통로를 가로막는 무단 이중주차를 반복해 온 상태였다.
사건 당일에도 주민들의 신고로 경찰관이 출동해 차량을 이동하라고 요구했으나, 피해자는 이를 당당히 거부한 채 무단 주차를 지속했다. 피고인이 홧김에 차량을 가로막은 데에는 피해자의 비상식적인 원인 제공이 결정적이었던 셈이다.
법원은 비록 피고인이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적 보복을 가한 점은 잘못이나, 피해자의 불법성이 훨씬 중대했고 이후 200만 원의 합의금 지급과 처벌불원이 이루어진 점을 감안하여 전과가 남지 않도록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실무 팁: 무개념 이중주차 차량 합법적 대응 수칙
사적 제재 대신 주차장 관리주체(관리사무소)를 통해 주차 규정 위반 스티커 부착 및 규약상 제재금을 부과하도록 요청해야 한다.
만약 도로교통법상 도로에 해당하거나 통행로를 전면 차단한 경우라면 일반교통방해죄나 업무방해죄 성립 여부를 검토해 경찰에 공식 신고하여 공권력의 개입을 유도하는 것이 내 전과와 지갑을 온전히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4. 판결이 던지는 현실적 교훈
이번 판결은 주차 갈등에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사적으로 응징하려 들 때 어떤 위험이 뒤따르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피고인은 선고유예를 받아 다행히 전과자 신세는 면했지만, 상대방의 적반하장 행태에 휘말려 기소되고 법정에 서야 했으며, 결국 200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합의금까지 피해자에게 지급해야 했다. 법은 아무리 억울한 사정이 있더라도 개인이 물리력을 행사해 남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를 정당화해 주지 않는다.
무단 주차 차량을 마주했을 때 섣부른 맞불 놓기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지위를 순식간에 뒤바꿀 수 있다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면책 공고]
본 글은 실제 선고된 법원 판결문을 바탕으로 주차 방해 행위에 대한 재물손괴죄의 성립 요건과 선고유예 양형 기준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자 작성된 일반 법률 정보 콘텐츠이다. 차량 출차 방해로 인한 재물손괴죄의 유·무죄 여부, 위법성 조각 여부, 처벌 수위는 차를 가로막은 구체적 방식과 기간, 이동 요청에 대한 대응, 피해 발생 정도 및 원인 제공 여부 등 개별 사실관계에 따라 법원의 판단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본 글은 개별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법률 자문이나 재판 결과를 보장하지 않으므로, 주차 갈등이나 형사 분쟁으로 법적 조치가 필요한 경우 반드시 전문 변호사와 직접 상담하여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