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 상사의 “이혼했다”는 말을 믿고 20대부터 40대까지 청춘의 16년을 바쳤는데, 알고 보니 남성의 완벽한 이중생활이었고 자신은 졸지에 ‘상간녀’로 몰려 소송까지 당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다.
1심 법원은 남성의 손을 들어주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으나, 2심 항소심 법원은 이를 뒤집고 “남성은 여성에게 1,5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수원지방법원이 어떤 법리로 1심을 깨고 남성의 책임을 엄중히 물었는지 그 내막을 살펴보고자 한다.
싱가포르 암 치료의 진실: 16년을 지탱한 치밀한 거짓말
사건의 시작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혼 여성이던 원고 A는 직장 상사였던 남성 B를 알게 되었고, 이듬해인 2008년부터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교제 초기에는 B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B는 이후 아내와 완전히 정리했다며 철저한 ‘싱글 연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 거짓말의 수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 연말정산 시즌에는 “나는 부양가족 없는 단독 세대라 서류 낼 것도 없다”고 둘러댔다.
- “아파서 혼자 있으니 외롭다”면서도 간병하러 오겠다는 A의 방문은 갖은 핑계를 대며 막았고, “집안일은 가사도우미와 직접 계약해 해결한다”며 동거 가족이 없는 척 행동했다.
- 심지어 모친상을 치른 뒤에는 “이제 진짜 나 혼자 남았다”며 A에게 기대기도 했다.
가장 충격적인 대목은 ‘가짜 투병’이었다. B는 중병에 걸렸다며 “종양이 4mm 커졌다”, “냉각파괴술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등 구체적인 의학 용어까지 써가며 입원 연기를 이어갔다. 심지어 진짜 아내와 떠난 싱가포르 가족 여행조차 A에게는 “싱가포르 국립대학병원에 암 치료차 입원한다”고 속인 출국이었다.
거짓말의 정점은 2023년 말에 터졌다. B는 “전처가 어머니 유산을 탐내며 협박하고 있으니 모르는 번호로 오는 연락은 절대 받지 마라”며 오히려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 본처에게 외도 사실이 꼬리 잡히자, 상간 소송을 걸어올 아내를 ‘협박하는 전처’로 둔갑시켜 선수 친 것이다.
직장으로 찾아온 본처, 그리고 드러난 삼자대면의 실체
영원할 것 같던 연극은 2024년 3월, B의 실제 아내가 A의 직장으로 직접 찾아오면서 막을 내렸다. 직장에서 성사된 삼자대면 자리에서 모든 진실이 폭로되었다.
A는 “내 16년을 사기당했고 졸지에 불륜녀가 되었다”며 절규했고, 아내 역시 “상간녀에게 독신 행세를 하려고 내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민등록까지 따로 파서 나갔던 것이냐”며 남편을 몰아세웠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진 B는 그제야 “양쪽을 다 속였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후 실제 아내는 A를 상대로 상간녀 위자료 청구 소송을 냈다. 그러나 법원은 “A는 B가 이혼한 줄로만 알았고, 고의나 과실로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이 아니다”라며 아내의 청구를 전면 기각했다.
자신이 상간녀가 아니라 완벽히 속아 넘어간 피해자였음을 확인한 A는, 곧바로 B를 상대로 4,000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항소심 법원이 1심을 뒤집은 핵심 법리: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1심 법원은 A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2심 재판부의 판단은 180도 달랐다. 재판부는 B가 A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1. 상대방의 기혼 여부는 성관계의 본질적 전제 조건이다
법원은 성적 자기결정권이란 단순히 성관계를 맺을지 말지를 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대방에 대한 정확한 정보에 기초해 자유로운 의사로 상대를 선택할 권리”를 뜻한다고 보았다. 특히 우리 사회 통념상 상대방이 법률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여부는 성관계를 결정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기혼자와의 교제는 향후 ‘불륜’이라는 사회적 낙인과 법적 책임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2. 피고의 변명은 일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남성은 재판 과정에서 “처음 만났을 땐 유부남인 걸 알지 않았느냐”, “오로지 성관계를 목적으로 만난 건 아니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남성의 주장을 일축했다.
- 비록 시작 당시 기혼임을 알았더라도, 이후 16년 동안 혼인 관계가 해소되었다고 적극적으로 기망해 착오를 유도한 사실이 인정된다.
- 가해자가 순수하게 연애 감정을 가졌거나 성관계 외 다른 목적이 섞여 있었다 하더라도, 상대방을 속여 성적 결정을 왜곡했다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 16년 동안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정 역시 기망에 의한 불법행위 성립에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다.
판결의 의의: 거짓으로 쌓아 올린 관계의 법적 대가
재판부는 B의 기망 내용과 수법이 매우 치밀했던 점, 16년이라는 교제 기간의 무게, 그리고 A가 뒤늦게 진실을 알고 겪은 극심한 정신적 충격과 상간 소송까지 휘말렸던 고통을 종합해 위자료 1,500만 원의 지급을 명했다.
이 판결은 교제 상대방에게 혼인 관계에 대해 거짓말을 하거나 이혼했다고 속여 성관계를 맺는 행위가 단순한 남녀 간의 도덕적 문제를 넘어, 민법상 손해배상 책임을 지는 명백한 불법행위임을 명확히 확인해 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 본 글은 실제 선고된 판결례를 토대로 기망에 의한 교제 및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에 관한 법리를 이해를 돕기 위해 정리한 참고 자료이며, 법적 판단이나 자문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혼인 여부나 이혼 사실에 관한 기망, 교제 경위, 인지 시점 및 입증 자료의 구체성에 따라 위법성 인정 여부와 위자료 인정 범위는 사건마다 전혀 다르게 판단될 수 있습니다. 유사한 피해나 분쟁으로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신 경우, 본 글의 내용만을 근거로 판단하지 마시고 법률 전문가의 개별적인 조력을 받으시기 바랍니다.